사이 몽고메리, <문어의 영혼>

새 문어는 들통 안에 있을 거예요
사실 이 책을 읽은지는 꽤 시간이 흘렀다. 아마도 두 달? 아직은 바람에 찬기가 있을 때 이 책을 덮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독후감 쓰기를 미룰 것을 예견한 과거의 나는 책을 읽은 직후에 메모장에다 아무렇게나 후기 몇 글자를 써놓았다. 이 후기는 전적으로 그 메모에 의지해서 써 본다. (보고 있자니 내용도 좀 기억이 난다.)
문어, 문어에 대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글쎄요, 제삿상 음식? 너무 잔인하게 들리지만 사실이다. 나는 일년에 한번 정도 문어를 만난다. 추석에 할아버지 제삿상 위에 올라온 거대한 문어 다리. 보통 그중에 두 점 정도가 내 몫이다. 나는 해산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특별히 잔인한 사람이어서 식용 문어부터 떠올린 건 아닐 것이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문어가 고급 식재료인건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니 한국인들에게, 적어도 내게 이 책의 제목은 재미있다.
문어의 영혼.
음, 어디선가 바락바락 화를 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인간 외의 생명체에게는 영혼이! 없습니다! 라고 외칠 법한 거대한 단체가 있으니까. 누구 말하고 있는지 잘 알리라 믿는다. 그래도 이 책을 신성모독으로 고소하기에는 이르다. <문어의 영혼>은 문어의 영적 활동을 탐구하는 책도 아니고, 문어가 (감히) 기도를 올리고 신에게 구제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책도 아니니까.
<문어의 영혼>은 단지 인간이 쓴 문어와의 교감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어와 같은 두족류를 너무 익숙하게 먹어왔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끔찍한 창조물이자, 서양 공포 신화의 한 갈래를 맡고 있는 심해 괴물 ‘크툴루’를 정서적으로 그렇게 무섭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가 그저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두족류의 미끈거림이나 끈적임, 촉수같은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까지 대중적인 공포는 아닌 것 같다. <문어의 영혼>을 쓴 저자 사이 몽고메리의 광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열렬한 찬미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초반부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내게 문어의 촉수가 심해에서 올라온 완전히 낯선 지성체의 증거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문어는 내 인생에서 그렇게 낯선 존재가 될 수 없었다.
흥미는 장이 넘어가면서 점점 솟았다. 이런 대목들을 읽으면서부터.
빌은 옥타비아가 빨판 하나하나를 제각기 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티브가 말했다. “그럼, 그녀가 피아노를 친다면 대단하겠는걸요, 상상이 가세요?” 우리는 감각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었다. 살갗에 닿는 옥타비아의 빨판의 느낌에, 미묘하게 바뀌는 그녀의 색깔에, 빨판들이 빙어를 입으로 물고 옮기는 과정에, 관절 없는 팔들이 펼지는 자유분방한 곡예에. …(중략)…”그러니 한낱 문어가 이처럼 영리하다면, 저 너머에 이처럼 영리할 수 있는 동물이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가 의식과 개성과 기억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동물들 말이에요.” 스티브가 빌에게 물었다. “매우 좋은 질문입니다.” 빌이 답했다. “저 너머 대양에 있는 동물들이 실제 어떤 존재들인지 누가 알겠어요?”
(본문발췌)
“문어의 생각을 읽는 어려움은 표현이 너무 풍부하다는 데 있어요.” 난 아쿠아리움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내가 알던 어떤 종보다도 표현이 더 풍부했다. “우리에게는 시와 춤과 음악과 문학이 있죠. 하지만 우리에게 갖가지 음성과 의상과 화필과 점토와 기술이 있더라도, 문어가 자기 피부만으로 말할 수 있는 표현을 따라갈 수나 있을까요?”
(본문발췌)
나는 마치 저자처럼 점점 문어에게 매료되었다.
문어는 각 촉수가 다 개별로 판단하고 움직인다고 한다. 문어의 촉수들은 심지어 뇌를 거칠 필요도 없었다. 8개의 팔이 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어의 대단히 예민한 빨판은 심지어는 감정까지 맛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러니까, 문어는 정말 인간을 이루고 있는 생체구조와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른 생물체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거대한 심해 괴물 ‘크툴루’에 대한 공포는 여기서 오는 걸까?
의외였던 것은 문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는 이야기였다. 예전에 물고기는 사람의 체온을 몹시 뜨겁다고 여긴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 때문일까, 나는 사실 저자가 내내 문어를 쓰다듬으며 즐기는 동안 그것이 계속 신경쓰였다. 찾아봐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그 부분이 신경이 쓰인다. (물론, 저자는 학자이고 아쿠아리움 직원들과 함께 동행했으니 어련히 알아서 잘 했겠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누군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비슷한 맥락으로 <문어의 영혼>을 읽으면서 내내 신경쓰이는 것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말할 이야기는 역시 교감의 장소가 결국엔 아쿠아리움의 수조라는 것이다. 문어와 교감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소개를 보았을 때, 내가 기대했던 장소가 아쿠아리움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저자는 아쿠아리움에서 여러 마리의 문어와 접촉한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인 이유는 문어의 수명이 몹시 짧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쿠아리움의 기본 시스템은 ‘문어가 죽으면 어린 새 문어를 잡아옵니다.’
문어의 수명은 원래 짧고, 어쩌면 험한 외부 환경보다는 안전한 아쿠아리움에서 더 오랫동안 건강히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나는 어린 문어 ‘칼리’의 사례가 마음에 남았다.
문어 ‘옥타비아’가 늙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보이자 아쿠아리움 직원들은 어린 새 문어 ‘칼리’를 잡아온다. 그러나 뜻밖에도, ‘옥타비아’는 죽는 대신 알을 낳았다. 알을 낳은 어미 문어는 적어도 그 알들이 부화할 때까지는 목숨을 부지한다고 한다. 늙은 문어 ‘옥타비아’와 그녀의 ‘드레스 같은 알꾸러미’는 금방 아쿠아리움의 인기 스타가 되었다.
어린 문어 ‘칼리’는 원래 옥타비아가 죽는 즉시 그 수조로 이사를 할 예정이었다. ‘칼리’는 어리고 작았으므로 들통에서 먹이를 받아먹고, 때때로 기어나와 장난을 쳤다. ‘칼리’는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아주 활발하고 영리한 문어였다. 그렇게 ‘칼리’는 커지고, 커지고, 또 커졌다.
마침내 들통이 몹시 갑갑해지고, 우울해질 때까지 ‘칼리’는 그 안에 있었다.
결국 ‘칼리’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어떻게 ‘칼리’의 수조를 마련하여 직원들은 ‘칼리’를 수조로 옮겨주는데, 관리 부실로 ‘칼리’는 수조를 탈출하여 메마른 바깥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저자는 ‘칼리’의 죽음을 무척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한다. 칼리는 호기심이 강하고, 영리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생물이었다고, 그녀는 ‘위대한 탐험가’라고…….
내가 위에서 ‘인간이 쓴’ 문어와의 교감 이야기라고 강조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글쎄, ‘옥타비아’도 ‘칼리’도 분명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인간과 교감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어를 교감이 가능한 지성체라고 표현하고, 관리 부실로 죽어버린 문어에게 ‘위대한 탐험가’라는 칭호를 붙여주며 안타까워하는 일은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이지 않은가. 그 문어들은 저 밖에서는 더 빨리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아쿠아리움이 문어를 잡아오는 목적이 문어들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켜주기 위해서는 아니지 않은가. 인간들은 그저 슬퍼할 뿐이다. 어머, 칼리는 참 똑똑하고 영리했는데…… 그녀다운 죽음이었어, 그녀에겐 탐험가의 기질이 있었지……. 칼리가 본 세계는 결국 고작해야 들통이긴 하지만 말이야…….
<문어의 영혼>이 나쁜 읽기 경험을 남겨준 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자의 열렬한 문어에 대한 애정을 따라가다 보면 문어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마침내 ‘문어’라고 하는 미지의 종이 성큼 눈앞에 다가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내가 ‘칼리’의 죽음에 분개한 것도 저자의 시선을 따라 그 어린 문어를 너무 사랑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쿠아리움이라는 배경에서, 저자와 손을 맞댄 여러 촉수의 주인들이 죽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마냥 즐거워하기에는 착잡한 기분이 드는 것도 막을 수 없다.
말하자면 이런 얘기다. ‘칼리’를 대신할 어린 새 문어는 또 들통에 있겠지만, 정말 그 문어가, 문어들이 사람과 교감하기를 즐겼다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예상 시간보다 쓰는 데에 오래 걸려 슬퍼하며
2019.06.24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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