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비턴 지음, <험담꾼의 죽음>
여작가는 남작가를 따라갈 수 없다니까
표지와 제목이 산뜻하고 귀여운 미스터리 소설을 읽었다. 먼저 할 이야기는, M.C.비턴의 본명이 매리온 채스니라는 것. 그렇다, 이니셜로 활동한 또 한 명의 여성 작가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그랬듯이 아주 많은 여성 작가가 성별을 숨기기 위하여 가명 또는 이니셜로 활동했다. 그 유명한 해리 포터의 작가 J.K.롤링 역시 출판사로부터 본명 대신 이니셜을 쓸 것을 제안받지 않았던가.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선 매리온 채스니 역시 그런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는 말을 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로는, M.C.비턴이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독특한 서술이 중간중간 눈에 뜨인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책을 읽고 난 뒤에 종종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의 감상을 검색해본다. <험담꾼의 죽음>은 무려 30권에 달하는(!) M.C.비턴의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인데, 누군가가 <험담꾼의 죽음>을 놓고 여성혐오적이라고 질색한 후기를 찾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왜 그 감상에 100퍼센트 동의하지 않는지에 관해 써볼까 한다.
먼저 내가 최근에 어떤 남작가의 추리 소설을 읽으려고 시도했던 이야기를 해야겠다. 끝내 나는 그 소설을 덮어버렸고, 읽지도 않은 소설을 욕하기가 멋쩍기 때문에 제목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초반부가 역겨워서 읽어줄 수가 없었다. 주인공이 마치 껌을 씹듯이 자연스럽게 여자들의 몸을 품평하고, 제 것인양 구는 꼬락서니란! 작가가 어찌나 혼신의 힘을 다해 각선미를 묘사하는지, 순간 나까지도 음흉하게 그녀의 다리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녀는 미국 여자처럼 치마 길이에 주의하지 않고 다리를 꼬고 있었다…… 예쁜 발과 주문 제작한 듯한 발목 위로 펼쳐진 풍경은 내가 이제까지 본 어떤 모습 못지 않게 만족스러웠다……”
아마 <험담꾼의 죽음>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런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이보세요, 여기도 그런 묘사가 나오는데요!” 그렇다. <험담꾼의 죽음>에서도 대단히 상투적인 외모 묘사가 다수 등장한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들이 그렇다. 주인공인 해미시 순경이 남몰래 마음에 두고 있는 아가씨 프리실라가 나타났을 때, 책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 허리는 잘록했고 단단해 보이는 젖가슴이 불룩 솟아있었다. 밝은 금발머리로 둘러싸여……”
재미있는 것은 이 장면이 의외로 그렇게 역겹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대체 차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집어던졌던 남작가의 추리 소설을 다시 펼쳐봐야 했다. 똑같이 작가가 여성의 몸매를 묘사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감상이 다른가? 남작가는 모두 더러울 것이라는 나의 편견어린 시선에 불과할까? 그러나 나는 <험담꾼의 죽음>의 초반부를 읽는 동안은 M.C. 비턴의 성별도 몰랐다. 묘사에서부터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구도만 보면 똑같이 남성 캐릭터가 여성 캐릭터의 몸매를 훑어보고 있는 장면인데 어째서 비턴의 책은 그렇게 역겹지 않았을까?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나는 남작가의 묘사가 왜 그렇게나 역겨워서 견딜 수 없었는지 잘 생각해보았고, 남작가가 활자 위에서 비킬 생각은 않은 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남작가가 남성 캐릭터의 뒤에 숨어서 햇빛을 받으며 반짝이는 여성의 다리를 숨죽여 훑고 있는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는 관음하고 있다. 아주 지저분하게 관음하고 있다. 그는 소설 속 탐정의 시선에 빙의하여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아가씨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도대체 남의 다리를 왜 그렇게 갖고 싶어하는지! 그 결과, 내 머릿속에서 이 아가씨는 보라색 눈과 희고 잘빠진 다리의 소유자로만 남게 되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를 관음하던 남자 캐릭터도 아마 나랑 생각이 비슷할 것이다. 남작가가 그녀의 희고 잘빠진 다리에 묘사의 추를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반면 비턴의 묘사는 말그대로 ‘상투적’이라는 느낌이 있다. 책을 읽어보면, 흥미롭게도, ‘여자의 가슴을 봤다’는 위의 묘사에는 아무런 무게도 실려 있지 않다. 해미시 순경의 시선은 그저 그 위를 스쳐갈 뿐이다. 마치 두꺼운 원목 탁자의 다리를 묘사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좀더 억측해보자면, 마치 비턴은 “다들 이런 식으로 쓰던데.”하는 느낌으로 아무데나 상투적인 묘사를 붙이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작가가 프리실라의 몸매가 얼마나 잘빠졌는지에 대해 그렇게 크게 무게를 두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결국 프리실라의 성격이 얼마나 쾌활하고 진취적인지를 기억하지, 그녀의 젖가슴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잊게 된다.
나는 근본적으로 여성을 설명하기 위해 외모가 얼마나 매끈하고 잘났는지에 대해 묘사하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이지만, 솔직히 말해 M.C. 비턴의 이런 상투적인 묘사들을 읽으며 몹시 즐거웠다. 말하자면 이건 ‘여성 작가의 한계’다. 우리는 도저히 남작가만큼 여성의 몸을 관음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누가 그걸 따라갈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해볼 만한 이야기는 문제의 험담꾼인 ‘레이디 제인’이겠다. 그녀는 <험담꾼의 죽음>에 나오는 명실상부한 대악당이다. 온갖 남의 뒷소문을 주워다가 사람들을 협박하고 궁지에 몰아넣고 즐기는 고약한 인물인데, 이 캐릭터에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언뜻 보면 이 이상 스테레오 타입일 수 없을 것이다. 험담에 환장한 결혼도 못한 나이 든 고약한 여성! 그러나 레이디 제인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가둘 수 없는 악의 축이다. 그녀는 대단히 치밀하고 절대적인 악의의 덩어리다. 굳이 비슷한 캐릭터를 꼽자면, 로알드 달의 <마틸다>에 등장하는 트런치불 교장을 들 수 있겠다. 트런치불 교장이 사람들을 똘똘 뭉쳐 대적하게 하는 악의 우두머리라면, 레이디 제인은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속물적인 근성을 강제로 까발려 지옥에 밀어넣는 악마다. 레이디 제인의 행보를 보면 감탄스러울 지경인데, 그녀는 흔히 '여성'이 그러하듯이 좁은 심보와 고약한 심술로 모두에게 태클을 거는 인물상이 아니다. 그녀는 대단히 치밀한 사람이다. 모임의 모든 일원들을 속속들이 조사하고, 속을 찌를 독과 같은 단어들을 벼려서 날아온,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다. 악랄한 준비성을 겸비한.
나는 M.C. 비턴이 여성이기에 레이디 제인이 이토록 치밀하고 강력한 악의 덩어리로 출현할 수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고 있다. 레이디 제인에게 여성의 부정적인 속성을 씌우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디 제인은 그 자체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악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의 속성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악의 단독자로 선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여자도 거대한 악역이 될 수 있다!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레이디 제인은 그런 인간인 것이다. 그런 여자가 아니라.
들떠 있고 자존감이 낮고 상류사회를 동경하는 19살 앨리스의 묘사가 가장 흥미로운 파트다. 앨리스는 <험담꾼의 죽음>에서 단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로, 그녀의 심리 묘사가 몇 파트에 걸쳐 이어진다. 때로 작가가 그녀의 내면 묘사 도중 지나치게 이입해버리는 장면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런 지점들이 정말 웃기고, 사실은 나 역시 이입하게 되었으므로 부끄러웠다.
앨리스는 얼핏 보면 흔하디 흔한 ‘속물 계집애’같은 캐릭터다. 실제로도 그녀는 속물이다. 그러나 비턴은 그녀를 ‘어리고 속물적인 계집애들이 흔히 그렇듯이~’하는 식으로 묘사하지 않는데, 이 지점이 <험담꾼의 죽음>에서 특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적나라하게 보이는 그녀의 서툰 수작들과 하루에도 수십번 좌절되는 기대는 오히려 독자에게 공감을 형성하고 동시에 공감성 수치심도 함께 안긴다.
분수에 맞지 않는 돈을 지불하고 낚시 여행에 온 앨리스는 이곳에서 ‘제러미’라고 하는 말끔한 부잣집 자제에게 반하고 만다. 그런데 그녀가 설레는 포인트들이 대단히 속물적이며 웃긴데, 제러미의 멀끔한 얼굴이나 목소리에는 하나도 설레지 않고 ‘고급스러운 애프터쉐이브’,라든가, ‘차체가 낮은 고급차’, ‘수상의 아내가 된 미래의 나’에 최고조로 흥분한다. 둘은 결국 상호간의 수작이 맞아 섹스를 하게 되는데, 섹스를 하며 앨리스는 이런 생각이나 한다.
“앨리스는 제러미가 서둘러 끝내주기만을 바랐다. 오르가슴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가 앨리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앨리스는 황홀감에 빠져 비명을 지르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 비명을 지른다면 사람들이 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방안으로 뛰어들어올지도 몰랐다.”
새벽에 이 장면을 읽다가 깔깔 웃어버리고, 나는 M.C.비턴의 작가 소개를 읽은 다음에, 여성 작가임을 알게 되었다. 역시나.
제러미는 당연히 속물 오브 속물, 쓰레기 오브 쓰레기이기 때문에 수상의 아내가 되겠다는 앨리스의 환상은 곧 땅바닥에 처박힌다. 물론 제러미가 수상이 될 리 없는 쓰레기라는 데에도 작가는 아주 많은 정성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작가란 이렇게 웃긴데!
누군가의 비판처럼, 시대착오적인 묘사들이 즐비하고, 특히나 주인공인 해미시 순경이 몹시 매력이 없지만, 작품이 나온 연도가 꽤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 비턴 역시 해미시 순경에게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물론 ‘해미시 순경 시리즈’로 30권이나 나오긴 했지만…… 적어도 1권인 <험담꾼의 죽음>에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음이 확실하다. 특히나 그가 레이디 제인에게 모욕을 주는 방식은 불쾌할 정도인데, 그는 엉덩이를 꼬집고 외모를 공격한다. 후반부에서 작가가 그에게 부랴부랴 무게를 몰아주는 것이 느껴지지만 주인공의 매력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기엔 늦었다. 2권이 크게 기대되지 않는 이유이다. 주인공이 매력이 없으니까.
그러나 풍광 묘사들이 매우 다채롭고 좋았고, 캐릭터 묘사들이 아주 좋았다. 특히 앨리스는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험담꾼의 죽음>은 미스터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추리가 그렇게 드라마틱한 작품은 아니다. 작가도 추리 퍼즐을 정교하게 쌓기 보다는, 위기에 몰린 사람들의 속물 근성을 관찰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 느껴진다. ‘코지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잘 어울린다.
오랜만에 읽은 산뜻한 미스터리 물이었다.
* M.C. 비턴이 쓴 여탐정 시리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히려 거기에 많은 흥미가 간다. 아쉽게도 아직 국내에는 번역이 안 된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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