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쉬 자이델의 『그림자로부터의 탈출』
프롤로그에 춥고 냄새나고 로켓 발사 소음이 굉장한 벙커와 탈출을 꿈꾸는 소년 죄수가 등장했을 때, 나는 숨죽이며 다음 이야기의 향방을 예측했다. 아마도 소년은 숱한 고비를 넘기며 탈출에 성공할 것이다. 아니면 탈출에 실패할 것이다. 탈출에 성공한다면 뭔가 중요한 것을 잃을 것이고, 탈출에 실패한다면 뭔가 중요한 단서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1장에서 갑자기 배경이 바뀌고 톰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소년이 주동인물으로 등장했을 때도 나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후반부에서 두 소년의 세계가 교차하면서 만나게 될 것이므로. 나의 자신만만한 예측은 빗나갔다. 빗나갔기 때문에 서두에 쓴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폴란드와 소비에트 연방 간의 관계를 잘 모르는 채로 이 소설을 읽었다. 기껏해야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지배-피지배 관계였다는 사실 정도였다. 그 정도만 아는 채로 시작했으니, 반도 국가의 국민인 나는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피상적이고 얄팍한, 교육에서 비롯한 식민지 기억을 이야기 위에 덮어쓴 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어도 무방하다는 점을 먼저 짚어두고 가겠다. 어느 나라나 타국을 무력지배하는 방식은 다 비슷한지 대체로 수법이 비슷했다. 무력, 교육, 착취, 역사왜곡 등. 외계인도 별다를 게 없더라.
프롤로그의 소년을 제치고 진 주인공으로 나선 소년, 톰은 지구인의 다정하고 위력적인 친구인 프록스들과의 삶에 완전히 적응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대체로 우수하지만 유난히 역사 과목에서 어려움을 겪는 톰은 본능의 단위에서 이 사회의 위선적인 꺼풀을 감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자는 의문이 많은 소년을 따라 경계에 둘러쳐진 붉은 깃발의 무서움을 목격하고, 개미에 호들갑을 떠는 어른들을 보며 천천히 사회의 윤곽을 더듬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톰이 점차 세계의 위선을 깨달을 무렵, 소설을 이끄는 동력은 프록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여정이 된다.
이 외계인들의 정체에 관해서는, 작가는 퍽 친절하게도 독자들이 추리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초반부터 계속 이런저런 단서를 던져준다. 프록스들은 단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특히 꿀), 모든 교과서에서 개미를 삭제하고, 혹시 개미에 관해 언급하는 자들은 다른 구역으로 강제 이주를 시켜버린다. 또 독자는(나는) 몰랐지만, 영리한 책 속 과학자들은 프록스들이 즐기는 환각 버섯이 개미에게도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다정한 외계인 침략자 프록스들은 개미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게 틀림없다. (무엇보다, 표지에 개미가 바글바글하다) 그렇다 보니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두 가지 정도의 뻔한 장면이 언제 등장할지를 다투며 맴돌아댔다. 첫째, 언제쯤 주인공들은 우스꽝스러운 갑옷 안에서 겁에 질린 쬐끄만 개미를 발견하게 될까? 둘째, 프롤로그의 소년 죄수는 언제 비틀거리며 톰의 산책길로 뛰쳐나올까? 이쯤에서 이 책의 특징을 하나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이 책은 독자에게 하여금 계속해서 다음 내용을 넘겨짚게 만들어 놓고,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
외계인의 정체가 무척 뻔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정체를 꿰어 맞추는 작업보다는 그것을 추리하는 작중 인물들의 행동을 따라가는 것에 더 재미를 느꼈다. 장르 규칙이라는 치트키에 의존해 쉽사리 확신해버린 나와는 달리, 용감하고 열의에 찬 과학자들이 과학적인(과학적으로 보이는) 규칙에 입각하여 외계인의 정체를 추리해가는 과정은 그저 눈으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SF에서 기대할 법한 재미다. 또 이 인물들은 당연히 느껴야 하는 의문들도 빼놓지 않았다. 프록스의 주장대로 모든 구역이 평등하다면 왜 강제 이주는 형벌이 되지? 날씨가 균등하지 않은데 어떻게 모든 구역이 평등할 수 있지? 무엇보다 프롤로그에 등장한 노예 노동 구역은 대체 뭐지? 본문에 이런 질문들이 직접적으로 등장했으니, 나로서는 당연히 해답을 넘겨짚으며 기대하게 될 수밖에. 물론 여기서 독자의 예상대로 해답으로 직진한다면 그 작품은 재미있을 수는 있겠으나 ‘그럴 줄 알았다’는 우쭐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야누쉬 자이델은 풍자소설에 걸맞는 방식으로 그 함정을 피해갔다. 과학자들이 손끝을 더듬거리며 프록스들이 왔을 사회의 모습을 추리한 끝에, 지금 이 행성에 있는 녀석들은 멍청한 말단 녀석들이 아니겠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때 나는 정말 즐거웠다.
그러나 결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끝이 나? 잠깐, 그러고 보니 프롤로그의 소년은 어떻게 되었어?
잠깐 비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이 책을 통틀어 등장하는 굵직한 원관념은 지배-피지배 관계다. 보조관념으로 등장하는 건 양봉가-벌떼, 그리고 물론 프록스-인간이다. 시니컬한 양봉가가 벌을 돌보고 지배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노골적인 데다 메시지와 잘 어울린다. 그러나 꽃가루를 먹고 자라는 일벌들과 로열젤리를 먹고 자라는 여왕벌에 대한 비유와 함께, 깨달음을 얻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영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로열젤리를 먹고 자란 여왕벌은 결국 양봉가를 위해 복무하지 않게 되나? 로열젤리를 먹고 자란 인간이 꽃가루를 먹고 자란 인간과 정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될까? 세계의 모순을 깨닫고도 체념하는 이들을 이르는 것일까? 비유를 확장할 때는 이래서 조심해야 한다. 어딘지 덜그럭거린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순간 독자는 정신없이 작가의 손아귀에서 달아나버리기 때문이다. 또, 프록스와 인간의 관계를 전범국과 식민지(이 경우에는 소비에트 연방과 폴란드이겠다)로 빗댄다고 했을 때, 결말에 등장하는 프록스 본성의 윤리적이며 선진적인 외계인 사회가 불러일으키는 감상은 다소 거북스럽다. 윤리적인 사회의 몇몇 타락하고 질 나쁜 무리가 타성을 침범하여 착취하고, 이 사실을 안 본성에서는 정의롭게 일어나 그 무리의 일탈을 벌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어도 괜찮은가? 내가 비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결말이 시사하는 바가 내게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말하기 위해서다. 나는 설마를 외치며 에필로그로 넘어갔다.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프록스가 없는 지구’의 모습이 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일부 봉합해준다. 프록스가 떠나자 인간들의 사회는 일부는 그대로 유지되고, 일부는 과거로 회귀한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관전하며 브릿지 게임을 한다. 중후반부 이 소설의 동력이었던 프록스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과 연구가 결국 끝을 맺지 못한 채로 갑자기 증발해버렸는데도, 이들은 그렇게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아보인다. 소설의 중후반부에서 이들이 들인 공과 보인 열정을 생각하면 이것은 대단히 이상한 반응이다. 이쯤에서 나는 성긴 결말의 매듭을 이해해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처음 추측했던 이 책의 원관념은 집단적인 세뇌와 체념에 가라앉아버린 피지배국가와 그 내부에서 또 갈라서는 세력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가장 강력하게 와닿는 이미지는 상위 존재의 가벼운 변덕이나 일탈, 자위적인 윤리관에 무력하게 흔들리는 인간 집단이었다. 실제로 일을 벌인 프록스 집단이 모행성에서는 골칫덩이 취급을 받는 말단 그룹이었다는 사실은 피지배 집단의 무력함을 더한다. 프록스 행성에 관한 정보는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전혀 공개되지 않고 오직 독자들에게만 공개되는데, 이 점도 신경 쓰였다. 이 세계관에서는 애써 궁리한 상위 존재(프록스)의 정체가 끝내 밝혀지지 않아도 궁극적으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물론 그런 일이 자주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 모든 묘사를 총동원하여 독자들의 호기심을 모아갔을 때, 결말에서는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 증발시켜버린다면 그 작품은 형편없게 쓰인 것이거나 의도가 있어 그렇게 쓰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나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이 책에서 낙관주의보다는 허무주의에 가까운 정서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구조가 작가의 의도하에 배치되었다고 생각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프롤로그에만 등장했던 소년에 관한 것이다. 내가 이 소년 죄수에게 너무 집착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프롤로그에서, 우리는 소년의 이름과 그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지 정보를 얻었다. 그렇다면 소년이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거나, 그가 있던 벙커가 왜, 어떻게 형성된 것이며 어떻게 와해되었는지 ‘서사’를 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관련한 정보는 나온다. 프록스가 갑자기 사라진 다음 프록스에게 착취당하던 이 억울한 정치범들은 세심한 케어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프롤로그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이 충분히 매듭을 지었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독서가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독서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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