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 <미스 플라이트>

아버지를 죽이기 위하여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은 짐작도 못하겠지만, 자식들은 생각보다 자주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다. 그 기도는 날 시퍼렇게 갈린 적의보다는 견고히 갈고닦는 방어에 가깝다. 자식의 말을 명령으로 멈추려 들 때, 모든 종류의 의문과 반문을 억누를 때, 사소한 순간을 갑자기 부모자식간의 파워게임으로 만들어버릴 때, 때로 이런 것들이 강압적인 폭력을 동반할 때 아버지는 자식에게 괴물이 된다. 이야기 속 괴물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아버지는 아주 오랫동안 자식을 지배한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와 아무리 물리적인 거리를 넓혀도, 아버지가 나에게 더는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더라도, 심지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도, 유년 시절의 괴물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죽인다. 아버지가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아버지가 그 지배력을 행사하려할 때마다, 그리고 아버지가 여전히 내 안에서 크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죽기를 기도한다. 아버지의 목숨이 끊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지배가, 아버지의 존재가 내 안에서 사망하기를 기도한다. 그가 더는 나를 막아설 수 없도록 기도한다. 적의라기보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자 독립을 향한 열망에 가까울 것이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변하기를 기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끊어내고 자신이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미스 플라이트>의 ‘정근’이 끊임없이 나를 건드렸던 이유다.
장례식장에 등장한 ‘정근’이 ‘철용’을 두들겨 패는 것을 상상할 때, 아버지인 자신보다 ‘유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유나’의 친구들을 보며 치미는 분노를 참을 때, 나는 ‘정근’의 얼굴이 누구를 닮았는지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근’이 끝끝내 화를 참을 수 있었던 이유가 놀라웠다. ‘정근’은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유나’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것이 자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근’의 이런 자각이 그가 좋은 아버지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정근’이 ‘유나’의 이야기의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소한의 자격을 부여하기는 한다. ‘정근’이 성인이 된 ‘유나’의 삶에 대해 전혀 아는 부분도, 차지할 수 있는 부분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 ‘유나’는 그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편지를 보낸다.
작품 내내 오직 과거의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유나’가 아버지 ‘정근’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복잡하다. 유나는 주변의 친구들과 남자친구에게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지만 그가 죽으면서 남긴 편지는 바로 그 아버지를 향한 것이다. ‘유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모든 편지들은 빠짐없이 ‘정근’에게 보내는 목소리다. 생전에 그와 아버지 사이에는 어떤 유대 관계도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퍽 이상한 일이다. ‘유나’의 어머니인 ‘지숙’은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나가 아빠라는 단어를 쓰지만 않았다면 경찰에 굳이 연락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러면 나는 당신을 조문객으로도 안 불렀을 거야.”
이처럼 ‘유나’가 죽음을 떠올린 순간 편지를 쓴 대상이 ‘정근’이라는 것은 인물들 모두에게 미스테리로 남는다. 심지어 ‘정근’에게조차도. 그러나 이로써 ‘정근’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유나’를 외면한 채 ’꼼짝없이 경비실에 앉아 ‘KF-16 태스크포스 출범 기념’이라는 글씨를 응시’하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어쩌면 ‘유나’가 의도한 것은 이런 전개였을 것이다.
‘유나’와 ‘정근’은 단순히 대척점에 서 있는 관계가 아니다. ‘유나’는 유년 시절을 ‘정근’에 의해 부유하게 보냈고, 그 때문에 아버지의 부하였던 ‘영범’과 그의 아내 ‘혜진’에게 가해자로서의 죄책감을 갖는다. ‘정근’은 기세등등한 대령이었으나 사사건건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전라도 출신’에 대해 맹렬한 미움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군 비리를 고발한 ‘전라도 출신’ 내부 고발자인 ‘윤 대령’을 자살로까지 몰고 가는 가해자의 위치에 선다. ‘유나’는 이런 아버지에게 반발하여 갈라서기를 선택하고, 항공사에 입사한 후에는 또다른 불의에 맞닥트린 ‘피해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그리고 이제 ‘정근’은 대령의 지위도 명예도 잃은 채로, 자살한 ‘유나’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히기 위해 그 회사를 찾아간다. ‘유나’가 가진 정의감과 트라우마의 근본적인 원인이 ‘정근’이듯이, 자살한 ‘유나’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근’ 역시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 때문에 자살한 ‘윤 대령’의 죽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유나’가 언제나 ‘정근’에게 바랐던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안에서 존재가 크다고 말할 때에 그 감정이 꼭 순수한 사랑이나 동경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떤 자식들은 자신의 안에서 아버지가, 유년 시절의 괴물이 이토록 크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유나’에게 ‘정근’도 그랬다. ‘정근’을 쉽게 부정하고 잊기에는 ‘유나’의 많은 부분이 ‘정근’에게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그럴 때 유령처럼 문득 마주친다. 내 안에서 어쩌면 영영 아버지를 죽여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유나’는 오히려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를 자신의 삶 속으로 적극적으로 던져넣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나의 인생 평생 동안 그림자를 드리웠으니, 이제 아버지가 나를 찾아 헤맬 차례예요. 아버지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왜 당신을 외면했는지를, 당신이 내게 얼마나 컸는지를, 그리고 그 사실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했는지를. ‘정근’은 이를 알아야만 한다. 그러니 ‘유나’의 편지들은 ‘정근’에게 뒤늦게 내미는 화해의 손길이 아니다. 한참 늦어버린 의무의 길로 초대하는 초대장이다. ‘유나’가 용납할 수 없었고 또 잊을 수도 없었던, 유년 시절의 불의에게 보내는 기회의 편지다.
작품 속에서 ‘정근’이 결국 읽은 편지는 단 하나 뿐이다. 작품이 시작하면서 등장하는 ‘유나’의 편지가 고작이다. 그러나 그 편지는 경비실의 의자에 앉아 있던 ‘정근’을 장례식장으로 불러냈으며, 그에게 무지를 자각하게 했으며, 자존심을 꺾고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더 이상 다른 편지가 없더라도 ‘정근’은 ‘유나’가 떠민 미로 안에서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를 영영 죽이고 싶어하는 ‘어떤 자식들’ 중 한 명으로서,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가슴이 저렸다.
마침내 나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아버지의 존재란 어떤 자식들에게는 공포인 동시에 떨쳐버릴 수 없는 욕망이기도 하다. 내가 <미스 플라이트>를 ‘정근’과 ‘유나’의 이야기로 읽은 이유다. 우리들은 아버지를 죽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계속 기다린다. 아버지가 나의 공포와 분노를 돌아보기를. ‘유나’는 어떤 의미로는, 아버지를 영영 죽여버리는 것보다 더 훌륭한 방법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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