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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 <두려움과 떨림> : 이방인의 말


아멜리 노통브, <두려움과 떨림> 





 

이방인의 말



<살인자의 건강법>의 타슈가 알렉산드라(*꼬냑에 코코아 크림 등을 넣어 만드는 음료)에 버터를 빠트릴 때부터 나는 아멜리 노통브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기란 어렵다.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은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게 녹아 있음에도 소설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탁월하다. 독자들은 그녀의 작품을 따라 읽으며 자연스럽게 노통브의 삶을 더듬게 된다. 노통브가 놀라운 속도로 수많은 작품을 내어놓는 배경에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조각 내어 글로 다듬는 것에 무척 능숙한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작품을 읽다 보면 퍼즐을 맞추는 듯한 기분이 든다. 퍼즐을 다 맞추더라도 우리가 끝내 노통브를 모를 것이라는 지점이 가장 즐거운 부분이다.

<두려움과 떨림>은 개중에서도 특히 자전적 요소가 강한 작품으로, 나는 언젠가 노통브의 작품에 대한 후기를 쓴다면 가장 먼저 <두려움과 떨림>을 써야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두려움과 떨림>은 내가 가장 많이 읽은 노통브의 작품이기도 하다. 노통브는 여러 작품에 걸쳐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일본에 대한 강렬한 경외와 경멸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왔다. <두려움과 떨림>은 말하자면, 일본을 너무나도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벨기에인 ‘아멜리 상’이 마침내 오랜 꿈대로 일본의 회사에 취직하는 이야기다. 마치 일본 전체를 축소해놓은 것과 같은 유미모토 사에.

일본의 경직된 수직 체계나 지나친 체면치레를 꼬집는 글은 수도 없이 있었다. <두려움과 떨림>이 독특한 것은 ‘아멜리 상’이라는, 자신의 뿌리를 반 정도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외국인이 화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다, 아멜리 상은 일본을 ‘미치도록 사랑한다.

그 사랑이 아멜리 상을 유미모토 사로 이끌었고 모든 일의 시작이 되었다.

 

‘미스터 하네다는 미스터 오모치의 상사였고, 미스터 오모치는 미스터 사이토의, 미스터 사이토는 미스 모리의, 미스 모리는 나의 상사였다. 그런데 나는, 나는 누구의 상사도 아니었다. (중략)… 그러니까, 유미모토 사에서, 나는 모든 사람들의 지시 아래 있었다.

 

<두려움과 떨림>의 서두이기도 한 이 문장은 유미모토 사에서 아멜리 상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유미모토 사가 벨기에 출신의 백인 여성 아멜리 상을 대하는 태도는 다소 우습다. 아멜리 상은 일본어를 잘했기 때문에 견습 사원이 되었지만 절대 일본어를 잘하는 티를 내서는 안 된다. 백인 여성이 일본어를 잘 알아듣는 티가 나면 간부들이 보기에 불쾌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일본어를 잊어버리라’ 라는 불가능한 명령으로 이어진다. 일본을 몹시 사랑하고 그들의 일원이 되기 위해 ‘오차쿠미(차 나르기)’의 역할마저 기쁘게 수용했던 아멜리 상은 첫 번째 벽에 부딪힌다. ‘일본 사람들의 머리와 달리, 서양 사람들의 머리는 어떤 언어를 억지로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본문 발췌)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오직 아멜리 상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 혹은 새디스틱한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그녀의 상사들은 쓸모 없는 일 시키기를 반복한다. 그런 아멜리 상을 위로하는 것은 단 하나, 직속 상사인 미스 모리, 모리 후부키의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다.

 

작중 아멜리 상의 후부키에 대한 열렬한 찬미는 독자를 다소 당황스럽게 한다. 어지간한 남자보다도 후리후리하게 큰 키에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 후부키는 유미모토 사의 유일한 여성 간부로, 작품의 초반부 내내 아멜리 상의 열렬한 찬사를 받는다. 후부키는 아멜리 상이 영원히 경외를 떨쳐버릴 수 없는 일본의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것은 후부키가 아멜리 상의 승진을 방해하는 대사건이 일어나도 변치 않는다.

‘유미모토 사의 유일한 여성 간부’, 29살의 나이’, ‘미혼’, ‘남자보다도 큰 키’……후부키를 이루는 이 모든 수식어를 통해서 그녀의 눈에 아멜리 상이 얼마나 아니꼬웠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몇 년간의 고생을 통해 간신히 올라선 자리를 냉큼 타고 오르는 젊은 백인 여성. 밉지 않을 수 없다. 후부키가 아멜리 상을 미워하는 방식은 지극히 ‘일본스럽다’.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며, 치밀하게, 아멜리 상의 존재를 좁히는 것. 그토록 사랑한 후부키의 손에서 아멜리 상은 경리로 떨어진다. 그녀가 가장 재능을 발휘할 수 없는 일으로.

사실 <두려움과 떨림>의 가장 재미있는 장면들은 아멜리 상과 후부키의 대치 이후 시작한다.

 

후부키는 아멜리 상의 무능함을 증명하고 자각하게 해서 그녀를 괴롭히려 한다. 어쩌면 자진 퇴사를 바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부키가 모르는 것은 아멜리 상이 결코 일본인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후부키의 우아한 괴롭힘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 결과 둘은 공간을 기묘한 방식으로 분할하게 된다. 후부키가 세운 컴퓨터와 숫자의 감옥에서 아멜리 상은 컴퓨터의 신이 된다. 후부키는 아멜리 상을 정신 지체자라고 부르며 비아냥댈 수는 있어도 아멜리 상이 그녀의 컴퓨터를 발가벗고 끌어안은 사실은 모른다. 후부키는 아멜리 상의 존재를 화장실로 몰아냈지만 그곳에서 아멜리 상은 또다시 만족을 찾아내는 식이다. 후부키가 여러 측면에서 일본의 미美를 형상화한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리고 아멜리 상이 일본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임을 생각해볼 때 이런 관계는 몹시 흥미롭다. 결국 아멜리 상은 일본 사회로의 편입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후부키는 <두려움과 떨림>을 통틀어 아멜리 상과 가장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인물이지만, 정작 아멜리 상을 진정으로 두렵게 만드는 인물은 따로 있다. 미스터 오모치, 폭력적이고 막무가내인 유미모토 사의 부사장이다. 후부키에 의해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을 때마저 아멜리 상은 ‘바닥에 떨어진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오모치가 강제로 그녀를 끌어내어 ‘노 페파!(No paper!) 노 페파!(No paper!)’를 외쳤을 때 아멜리 상은 주저앉아 ‘문맹文盲의 눈물’(*본문 발췌)을 떨군다. 그것은 진정한 절망이고 후부키가 그녀에게 느끼게 만들고 싶어했던 수치심의 눈물이다. 오모치의 앞에서 그녀는 어떤 보복의 대상도 불합리한 인사 이동의 대상도 아니다. 후부키는 아멜리 상을 증오하지만, 오모치에게 그녀는 그저 제 자리에 있지 않은 휴지에 불과하다.

아멜리 상은 유미모토 사를 사퇴하기 위해 오모치에게 또 한 번 패배한다. ‘자신이 직접 권한’ ‘일본 특산의 초콜릿을’ ‘부하 직원이 거절하자’ 미스터 오모치는 반쯤 미쳐버린다. 아멜리 상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결국 그 멜론맛 화이트 초콜릿을 삼켜야 했다. 아멜리 상은 후부키에게는 어떤 대우를 받아도 자기 자신의 세계, 박제된 일본의 아름다움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나 미스터 오모치의 일직선적이고 단순한 폭력성 앞에서 그 세계는 깨진다.

이쯤에서 우리는 미스터 오모치 앞에 선 후부키를 생각해야 한다. 아멜리 상이 오모치의 앞에서 주저앉아 울고, 무릎을 꿇는 일은 오모치의 앞에 섰던 후부키를 재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부당하고, 폭력적이며 심지어 사디즘적인 쾌락에 취해 있는 오모치의 고함 앞에서 후부키는 긴 활처럼 꼿꼿하던 허리를 구부리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화내지마, 화내지마.’를 반복하며 무너진다. 후부키가 자신처럼 오모치 앞에서 무너진 아멜리 상의 눈물을 보며 어떤 쾌감을 느꼈을 지 상상해 보라.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석고가 부어진 후부키와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만으로 일본에 뛰어든 아멜리 상은 영원히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 아멜리 상이 후부키를 그토록 아름답게 여기고 찬미하는 것은 그녀가 영원히 후부키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미스터 오모치가 일본의 폭력적인 수직 사회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후부키와 아멜리 상은 모두 피해자다. 그러나 아멜리 상이 오모치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과 달리, 후부키는 수천 명의 오모치 아래에서 몇 번이고 아이처럼 허리를 구부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두려움과 떨림>의 마지막 부분에서 전율과 슬픔을 느꼈다. 일본에서 탈출하여 유명 작가가 된 ‘아멜리 노통브’의 앞으로 도착한 모리 후부키의 서신이 일본어로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아멜리 상은 퇴사의 순간, 은밀하게 모리 후부키를 농락한다. 자신을 철저히 깔아뭉개고 낮추고 후부키보다 못한 존재임을 증명하여, 쾌락으로 가늘게 떨리는 후부키의 입술을 관음한다. 납작 엎드리는 아멜리 상을 보며 쾌락을 느끼는 후부키의 모습은 어느한 편으로는 미스터 오모치와 유사하다. 일본 회사에 끼어들어 간 백인 여성 아멜리 상의 존재는 이 책의 서두에서 시작하듯이, ‘가장 아래에서’ 멸시당하며 일본 사회가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를 낱낱이 드러낸다.

모리 후부키는 자신이 정신 지체자라고 칭하며 멸시했던 아멜리 노통브의 유명세를 접하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멜리 노통브는 일본 사회에 결국 편입되지 못하고 튕겨 나갔으나, 후부키에게서 일본어로 된 서신을 받는 순간만큼은 ‘아멜리 상’이 되어, 다시 한 번 일본으로 굴러 들어간 이방인이 된다. 유미모토 사 밖의 아멜리 노통브가 어떤 인물인지는 후부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이것은 노통브가 말하고자 하는 ‘일본다운 태도’일 것이다.

 

후부키와 아멜리 상은 영원히 서로를 가로지르지 않고 걸어갈 것이다. 그러나 미스터 오모치의 앞에서 똑같이 주저앉는 둘의 그림자를 생각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후부키와 아멜리 상이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언정, 완전히 멀어진 채 걸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필연적으로 이방인의 굴레를 짊어지게 된 이들은 모두 평행선을 그리며 걸어갈 것이다. 마주치지는 않지만, 서로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2018.04.04 (), 비 오는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