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4(토)
틸란드시아의 도시
나는 머리칼이 쭈뼛 얼어붙을 것처럼 추운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싸맬 수 있는 만큼 몸을 싸맸습니다만 뺨 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결정이 된 붉은 얼음조각들이 혈관 속의 통점이란 통점을 모두 할퀴며 흐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나는 원래 충동적으로 아무 가게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만은 그런 사정으로 처음 보는 카페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인테리어에 퍽 신경을 쓴 카페 같았습니다. 회칠이 된 벽을 그대로 드러낸 다음 그 위로 가느다란 파이프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덮도록 해놓았더군요. 파이프가 겹치는 연결고리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작은 전구들이 걸려 있었고 그 앞줄을 따라 로즈골드 빛깔의 오브제들이 우아하게 반짝였습니다. 어지간한 공연 기획자라도 깜짝 놀랄 정도로 커다란 스피커가 공간 한쪽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는데, 거기서는 뜻밖에도 달콤하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지요. 빵이나 케이크 따위도 파는 모양인지 밀가루를 굽는 고소한 냄새가 누구의 혼이라도 빼놓을 것 같았습니다. 공기가 몹시 따뜻하여 나는 잠시 문 앞에 서서 꽁꽁 언 발끝으로 찌르르한 기운이 돌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퍽 후질근한 경량패딩을 걸쳐입은 카페 주인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메뉴판을 내밀지 않았더라면 난 꽤 오래 그러고 있었을 겁니다. 이럴수가, 나도 똑같은 옷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걸 입고 왔더라면 무척 후회할 뻔 했습니다.
따뜻한 밤이 들어가는 음료를 주문한 뒤 앉고 보니 손님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둡고 아늑한 공간을 밝히는 것은 벽을 따라 줄줄이 걸린 작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전구들 뿐이었죠. 내가 아까 전구를 따라 걸린 로즈골드 색의 오브제들 이야기를 했던가요? 그래요. 가느다란 알루미늄 뼈대로 만든 오브제들은 천천히 흔들리며 전구의 빛을 사방으로 반사해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퍽 아름다웠습니다. 그 오브제 안에는, 예상했겠지요, 우아한 회녹색을 띤 작은 틸란드시아들이 놓여 있었죠.
틸란드시아라는 이름이 그리 생소하진 않을 겁니다. 요 몇 년간 무척이나 유행하고 있으니까요. 이름을 모르더라도, 어떻게 생겼는지 본다면 분명 알아볼 것이 틀림없습니다. 카페 다섯 곳 중 한 곳은 이 녀석을 키우고 있거든요. 내가 카페 안이 퍽 어둡다고 말했었죠. 유일한 광원이라곤 조금 독특하게 생겼다 뿐인 꼬마전구들이었는데, 그 앞에 대롱대롱 매달린 그 우아한 녹색 덩어리들은 회칠된 벽 위로 그림자를 큼직하게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꼭 웅크린 거미 같았어요. 아주 커다란 거미 말입니다. 아래가 뾰족한 오브제들은 꼭 인형뽑기 기계의 어설픈 집게발처럼 보였습니다. 어설픈 집게발에 포획되고 만 녹색 거미들은 온풍으로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어요.
내가 벽을 성기게 덮은 파이프들이 꼭 거미줄 같다는 말도 이미 했나요?
그래서 나는 따뜻한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다음 틸란드시아를 검색해보게 된 겁니다. 세상에. 섣불리 동정심을 가진 스스로가 우습도록 놀라운 식물이더군요. 몇 년 사이 이 녀석들이 크게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하하, 물론 사계절의 나라에는 다소 어색한 그린 인테리어라는 고급스러운 취향도 있었습니다만은 미세먼지의 영향이 컸지 않습니까? 공기 중의 먼지를 흡수해 살아간다니, 이 뿌연 세계 속에서 이보다 기능적으로 훌륭한 반려식물이 어디에 또 있겠어요? 아니, 그렇게 흘려 듣지 말란 말입니다. 내 말은, 약간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완벽하지 않습니까?
한 번 꽃을 피운 뒤에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자구, 그러니까 새끼를 불리는 일에 모든 역량을 다한다고 쓰여 있더군요. 그래요, 역량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꼭 웅크린 거미 같은 저 그림자들을 보며 약간의 추위를 느꼈습니다. 온풍기는 내 머리 바로 위에서 잘 돌아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녀석들이 전화선 위에서도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압니까?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러고보니 이 카페 주인은 대체 왜 벽면을 전화선으로 뒤덮은 것일까요? 아니, 알아요. 파이프지요. 거미줄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왜 꼭 저런 모양으로 놓은 것일까요? 저 속으로 무엇이 흐르고 있기라도 한 걸까요?
부드럽게 달랑거리는 녀석들 중 절반은 꽃을 피웠더군요.
바깥이 이렇게 섬뜩하도록, 포유류의 뺨 속이 얼어붙도록 추운데 저 멕시코 태생의 풀들이 저토록 잘 자라고 있다니요. 강렬한 태양도 없는데요. 그러고보니 꼭 전구 하나 앞에 하나의 틸란드시아가 있었습니다. 나는 말로 하기 힘든 감정으로 얼어붙었습니다.
그러자 카페 주인이 다가와 따뜻한 물이 한 잔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이제 나는 그의 호의도 저 쓸데 없이 커다란 스피커도 순순히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난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날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당신은 정말 그런 의문을 느껴본 적이 없단 말입니까? 이런 공포를요? 도저히 이 땅에서 자연적으로는 자랄 수 없는 것들이 불의의 조력자들을 통해 들어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그런 공포를요? 애초에 우리가 정말로 저것들을 마음대로 옮겨 심고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전화선 위에서도 자란다는 저것들을요? 우린 그저 저것들을 위한 거대한 요철을 선물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먼지도 공급하고 있고요. 저것들은 흙에 발이 묶여있지도 않습니다.
저것들이 1000년 전에도 먼지를 먹었을까요? 1000년 후에는요?
난 음료를 엎지르고 깨진 컵의 값을 낸 다음 황급히 그곳을 나왔습니다. 지금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말하기란 쉽지 않군요. 그래요, 하지만 이건 내 오랜 공포입니다. 아마 난 언제고 또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겁니다. 대상이 틸란드시아가 아니더라도요. 우리는 그 무엇도 다룰 수 없는데 다루고 있다고 크게 착각하며 한 세기 이상 살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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