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6(월)
신발끈
이보세요 신발끈 신발끈이 풀렸네요 아가씨 신발끈이 놔두세요 제발요, 저는 바빠요 정확히 5분 후에 지하철이 도착을 할 테고 문이 열려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30초 남짓할 테죠, 저는 아주 침착하게 걷고 싶어요 결코 뛰고 싶지 않으니까요 아가씨의 신발끈이 홀로 움직이고 있네요 아가씨의 신발끈이, 침착과는 당신과 지하철의 거리만큼이나 떨어진 채 보도블록 위를 나풀거리고 있어요 이런 젠장! 거슬려서 못 견디겠단 말이에요 당장 그 끈을 묶지 못해 이런 젠장! 나에게 신경을 좀 끄란 말이야 왜 나에게 참견을 하지 못해 안달이지 내게는 모든 계획이 있어 초 단위로 계획이 짜여 있단 말이야, 신발끈 정도는 신경쓸 가치도 없지! 밟아 넘어지는 것 역시 내 소관이니 여러분은 갈 길 가시라고요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이고 나는 이제부터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내가 가던 길을 가겠어요 내겐 고작 3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1분 치만큼밖에 걷지 못했단 말이야 나는 이제 더 빨리 걸어야만 해요 보폭을 좁히고 아까보다 더 빨리, 학생, 신발끈이 풀렸네요 학생 신발끈이 제발 날 그만 내버려 둬! 나도 신발끈도 내버려두란 말이야 학생, 학생의 분노는 부당한데요 나는 고작 한번, 선량한 마음으로 말을 해주었을 뿐인데 학생이 저 뒤에서 제법 빠른 속도로 걸어 내 앞에 나타났을 뿐이라고 학생 이건 그냥 알아두었으면 해서 하는 말인데, 학생이 점점 빨리 걸을수록 신발끈이 더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고요 학생의 발이 가리키는 방향을 좀 봐! 아주 엉망진창으로 스텝을 밟고 있군 아마 내가 추측하건대 이대로 걷다간 학생은 1분 내로 신발끈에 발이 걸려 넘어질거요 그것 역시 내 소관이에요, 제발 날 내버려둬요 이제 내겐 2분 밖에 남지 않았어, 나는 아직 2분 치만큼밖에 걷지 못했는데 아직 3분 치만큼을 더 걸어야 해 감사합니다 여러 시민분, 용감한 시민 상이라도 수상하고 싶은 모양이죠? 덕분에 저는 지하철을 놓치게 생겼어요 이제 전 아까보다도 더 빨리 걸어야 해요 그만! 신발끈을 쳐다보지 마! 그만 쳐다보란 말이야 당신의 앞에 놓인 블록이나 신경쓰란 말이에요 내게는 다 정해진 속도가 있어요, 난 지금 정확히 3분 치의 빠르기로 걷고 있어요 이대로면 난 뛰지 않아도 문을 통과할 수 있을거야 그래, 물론이지 아가씨의 그 신발끈이 문 틈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좋아요 그렇게 안달을 내니 내 계획을 설명하죠 지금의 속도를 유지하며 따라오세요, 그럼 설명을 들을 수 있을 테니 내가 신발끈을 묶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 성긴 끈을 푼 다음 다시 꽁꽁 동여맬 때까지 대체 얼마나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랬다간 이제 1분 후면 도착할 지하철에 올라탈 수 없을 거야 잘 생각들 해보시라고요, 신발끈은 지하철에 탄 뒤에 묶어도 충분해! 내가 언제까지 존대를 하며 당신들을 연장자로 대우해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내가 지하철을 놓친다면 그건 내 다음 계획이 모두 백지로 날아간다는 뜻이지 그렇게 된다면 당신들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해봤나? 안 해봤겠지 왜냐하면 나는 이렇게 여리고, 또 어리고 또, 교복을 입었으니까? 하지만 당신들이 이렇게 길을 막은 까닭에 이제 나는 달리겠어요 힘껏 달리고 달려서 당신들의 불필요한 친절을 모두 뒤로 던진 채 나는 신발끈을 너풀거리며 지하철에 올라탈 거야 신발끈을 반드시 풀어헤친 채 지하철에 타고 말 거라고, 알아듣겠어 내게는 반드시 신발끈을 푼 채 지하철에 타야하는 이유가 있단 말이야 내가 말했지 나는 다 계획했다고!
지하철 문이 열리고 끈이 헐겁게 풀어진 운동화 두 켤레를 손쉽게 벗어던진 소녀가 맨발로 가볍게 스크린 도어를 밟고 뛰어올라 지하철 등 너머로 미끄러지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끈이 너풀거리며 흩어진 운동화 두 켤레 역시 지하철에서 쏟아져나온 사람들의 발 틈에서 몇 번 차이다가 곧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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