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5(일)
바이럴 마케터의 악몽
나는 온갖 취향으로 얼룩진 인터넷 카페 가입 목록을 들여다보았다. 새로운 카페에 가입을 할 때마다 순순히 정보수집에 동의했으므로 나는 지금 명품을 좋아하고, 직구를 종종 하며, 결혼을 일찍 하여 벌써 아이가 둘이고, 임사체험에도 관심이 있으며, 키우는 햄스터의 간식을 직접 만드느라 한 달에 한 번 재래시장을 가고, 주말마다 약초를 캐러 산행을 다니는 94년생 여성으로 집계되어 있을 것이다. 나말고도 그런 사람이 또 있다면 말이다.
이 모든 건 아르바이트 때문이었다. 집에서 만만하게 할 만한 아르바이트를 찾다보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 한 사이트에서 아이디를 세 개까지 만들 수 있었으므로 나는 그냥 하나의 아이디를 통째로 버려놓기로 결심했고, 광고주의 요청대로 온갖 카페를 누비고 다녔다. 나는 곧 각종 연령대의 말투를 터득했다. 나의 인터넷 자아가 섞이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큰 일이었다. 일요일 아침 약초를 캐러 지리산에 갔다는 포스팅을 해야 하는데, 내가 셋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라고 쓰면 안되니까 말이다. 직구 카페에 유모차를 직구할 셈이라고 쓰는 건 그럭저럭 어울렸으므로 가끔 두 자아를 섞어 써먹기도 했다.
한 건당 받는 돈의 액수가 그리 크진 않았다. 하지만 일종의 박리다매라고 할까, 나는 정말 많은 게시글을 썼으므로 그럭저럭 한 달을 먹고 살 정도는 벌었다. 나라고 언제까지 인터넷 상의 카페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허섭쓰레기 같은 광고 글을 쓰는 것으로 풀칠할 셈은 아니었다. 광고 글에 대한 카페 운영진의 심기는 점점 날카로워져서, 아무리 말투를 완벽히 습득한 나라고 해도 활동정지를 받는 사태가 점점 자주 벌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광고주는 어떻게든 자기 말을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다 넣길 원하고, 현실 세계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광고주 밖에 없단 말이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졌다. 택배가 배송되어 왔는데, 그 안에 난데없이 도깨비 방망이가 들어 있었다. 도저히 구매한 기억은 나지 않는데, 도깨비 방망이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으므로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그걸 썼다. 술이라도 마시고 충동 구매를 했나? 요즘은 버튼 하나만 클릭해도 주문부터 결제까지 끝나버려서 합리적 소비인지 고민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으므로 일리가 있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약간의 공백을 두고 연달아 햄스터 이갈이용 익스트루전과 젖병 소독기, 만트라(대체 왜?)가 도착하자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스토커라도 생겼나 의심해보았으나 결제 내역에는 착실히 내가 구매한 것이라고 찍혀 있었다. 마침내 날이 시퍼렇게 선 괭이와 끌, 산악용 GPS가 도착했을 때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의문스러운 택배들의 공통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한 순간이었다. 잠깐, 이것들 다 내가 가입한 카페와 관련이 있는 것들이잖아. 그때 내 머리를 점령한 가장 큰 공포는 내가 명품 직구 카페에도 가입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서는 내 전재산의 세 배쯤 되는 금액들이 우습게 날아다닌다.
황급히 로그인을 했더니 새 글 알림에 빨간 동그라미가 떠 있었다. 하지만 요 몇 주간 나는 직업에 대한 고뇌로 가득 차 광고글을 쓰지 않았는데.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새 글 알림을 클릭했고, 그래. 클릭했다. 거기에는 내가 쓴 기억이 없는 제품 후기들이 아주 상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배송 후기, 언박싱, 1주 사용 후기, 2주 사용 후기, 한달 사용 후기까지.
나는 고맙다는 댓글이 빼곡하게 달린 게시물을 들여다보며 어이가 없어 잠시 앉아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익스트루전 후기를 내가 어떻게 쓸 수 있단 말이야. 나는 햄스터도 안 키우는데! 어떻게 기호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을 수 있냔 말이야?
그때 방에서 갉작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원룸에 살고 있고, 내가 말하는 방이란 건 내가 앉아있는 이 공간을 뜻한다. 평소 같았으면 바퀴벌레겠거니 했겠으나……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손을 떨며 뒤를 돌아보았다.
60리터짜리 아크릴 박스와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분명 관리를 잘 받았음이 틀림없는) 작은 동물 친구를 보는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추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감도 못 잡겠다.
누군가가, 그러니까 인간을 초월한 누군가가 나를 끈으로 당겨 조종이라도 하고 있지 않는 한 이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우선 명품 직구 카페부터 탈퇴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입한 카페 목록을 열었다. 그런 다음…… 그런 다음…… 산악용 GPS 후기를 써야지. 써봤더니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아 오랜 산행을 계획하고 있는 회원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고.
새 글 알림이 반짝거리며 새 알림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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