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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쥐의 씨앗

2020-01-07

 

쥐의 씨앗

 

샤워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샤워의 패턴은 늘 같다. 우선 두피까지 꼼꼼하게 거품낸 샴푸를 올려 문지른다. 거품머리를 한 채 양치질을 한 다음, 얼굴에 클렌징폼을 얹고 샤워기의 수압을 올려 머리에 얹어진 모든 비눗기를 씻어낸다. 누군가 두피를 꼼꼼히 닦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서, 되도록 두피를 눌러가며 씻으려고 노력한다. 린스를 약간만 짜서 머리 끝에 문지른 다음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잠깐 기다리다가 다시 깨끗하게 씻어낸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데는 약 17분 정도가 걸린다.

14분쯤 되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아직 머리 끝에 린스를 비벼대고 있을 때, 나는 왼쪽 발바닥 앞꿈치께에 무언가 빳빳하게 몸을 당기며 태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하필이면 지금.

 

아, 정말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나는 우선 쭉 늘리던 다리를 조심스럽게 당겨 똑바로 섰다. 약간이라도 다리에 힘을 넣는다면 그 즉시 씨앗이 발아하여 내 다리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평소보다 이르게 비눗기를 씻어낸 다음 최대한 상반신만을 늘려 수건을 집었다. 차마 왼쪽 다리의 물기를 닦을 엄두는 내지 못했다. 아, 이제 종아리께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천천히,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차라리 몰랐다면, 과감히 다리를 뻗다가 순식간에 삼켜졌더라면.

불의의 습격을 받아야 한다면 내가 아예 모르도록 두는 게 최소한의 미덕 아닌가.

 

나는 약하게 절룩이면서 거실로 나가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바지를 입을 때는 무척 조심해야 했다. 어떤 작은 온기가 불현듯 씨앗을 깨워버릴 지 모르는 일이므로. 씨앗은 느닷없이 찾아와 다리를 비틀고 쥐어짜고 우걱우걱 삼켜대다가, 내가 필사적으로 엄지 발가락을 당겨대며 울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야 마지못해 우악스럽게 다리를 주무르면서 물러났다. 최대한 비위를 맞추며 살살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물러나주었으므로 나는 그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왼쪽 발 가운데 오목하게 파인 아치에는, 복숭아 씨앗처럼 아치에 꼭 들어맞는 모양으로 어떤 덩어리 같은 것이 언제고 내 다리를 삼킬 기회를 노리며 웅크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제대로 지면을 디딜 수도 없었다. 만약 구름을 밟는다 해도 나는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불에 주름도 가지 않을 만큼 조심스럽게 침대에 올라앉아 종아리께를 주무르려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 그것이 시작되었다. 종아리를 이루는 큰 근육 덩어리가 급속도로 수축하더니 곧 녀석에게 잔인하게 뜯어먹혔다. 이어서 힘줄을 잡아당기며 다음 근육을 입에 무는 녀석이 느껴졌다.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발가락을 움켜쥐었다. 보드라운 잠옷 바지 아래에서 내 다리가 온통 파헤쳐지고 흉하게 불룩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견뎠다. 견뎠다. 견뎠다.

곧 천천히 녀석이 만족하지 못한 숨을 그르릉 내쉬며 마지못해 물러서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빠르게 몸집이 오그라들더니, 복숭아 씨앗만해졌다가, 다시 천천히 발바닥 어딘가로 스며드는 것을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헐떡이며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나 어디로 돌아갈 수 없는 터라 나는 또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녀석의 허기를, 또 아무 방비 없이, 여기 누워서……

 

아무리 조심해도 소용이 없다면 왜 내가 조심해야 하지? 차라리 앞당겨 겪어버리고 일찍 해방되는 편이 더 좋은 것 아닌가? 그러나 정말 해방되는 날이 오기는 하나? 애초에 내 안에서 태어나는 고통의 씨앗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유기질로 된 사슬에 나는 무력하게 갇혀 있다. 조율할 수 없는 수많은 것을 조율하려 애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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