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4(화)
사인, 코사인, 그리고 탄젠트
사인과 코사인은 뱃머리에 서 있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쌍둥이로 태어난 두 사람은 조선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자연스럽게 일을 배웠다. 무난한 유년시절이었다. 열다섯이 되던 해, 뛰쳐나와 배에 몰래 오르지만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지금도 고향에서 아버지를 도와 조선소 일을 거들거나 어머니를 따라 회계를 배워 밥을 벌어먹고 살았을 것이다. 아니, 코사인은 어머니에게 배운 회계를 어떻게 잘 써먹고 있기는 했다. 셈에 밝은 코사인을 선장은 퍽 아껴서 그에게 장부와 국자를 맡겼다.
뱃머리에 선 쌍둥이는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인이 먼저 말했다.
“티니는 잘 있을까?”
“어머니 아버지도.”
코사인이 말을 받았다. 그들이 떠나올 무렵 한 살 터울 위의 여자 형제 탄젠트는 학교에 가게 되어 아주 들떠 있었다. 사인과 코사인이 아버지의 조선소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되어 집에 여유가 생겼고, 마침내 탄젠트에게도 의무교육의 기회가 돌아온 참이었다. 의무교육이라는 개념이 아직 생소한 항구 마을에서는 의무란 게 꽤 느슨하게 적용되었다. 한 집에 자녀가 여럿인 경우, 굳이 모든 자녀가 반드시 같은 시기에 교육을 받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남자아이 다음 순번으로 의무교육을 미뤄도 괜찮았다. 교육을 받아도 결국 써먹을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티니, 키도 크고 힘도 셌던 티니, 그렇지만 벌레만 보면 우리를 고래고래 불러댔던 티니. 두 사람은 잠시 같은 사람을 떠올리며 킥킥 웃었다. 어쩌면 두 사람이 냅다 달아나는 바람에 탄젠트는 고대하던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집이 텅 비게 둘 순 없었을 테니까. 어머니는 회계 사무실로 출근을 했고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일했으니 사인과 코사인 형제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집안일은 모두 탄젠트의 차지였다. 탄젠트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사인과 코사인이 번갈아가며 한 번씩 집안일과 조선소 일을 맡아 하기로 말이 되어 있었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이 증발해 버렸으니, 탄젠트는 다시 집에 갇혔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쯤이면 어차피 결혼을 했을 테고, 어머니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편의 옷을 깁고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쓸 데도 없는 어린 시절의 원한 같은 건 떠올릴 틈도 없으리라.
뱃머리는 이제 완연히 동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사인과 코사인이 나고 자란 항구 마을 트라이앵글로 가는 방향이었다. 십 년 만이던가? 그래, 십 년 만이지. 사인은 감상에 잠겨 말했다.
“그럼 우리에게 조카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군.”
“징그러워.”
“그래? 난 벌써 귀여워 죽겠는데.”
두 사람은 킥킥 웃었다. 곧 선장이 코사인을 불렀다. 곧 점심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배는 이른 오후 중에는 닻을 내리고 하선할 것이다. 두 사람을 포함한 선원들은 배에 남은 묵은 빵과 마른 고기들, 그리고 술병을 모두 꺼내어 떠들고 먹고 마셨다. 곧 배에서 내리면 사인과 코사인 형제는 가족과 회포를 풀고 선원들은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물자를 채워 항해를 시작할 것이다.
이변은 해변으로 가까이 갈 때쯤 벌어졌다.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을 잡고 있던 선원 하나가 소리질렀다.
“선장님! 여기 뭔가 이상한데요! 여기 뭔가……”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날아온 번쩍이는 것에 어깨가 꿰뚫려 전망대 아래로 추락했다. 1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가, 곧 물을 왁 쏟아부은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선장과 선원들이 허둥지둥 달려가 키를 잡고 시체를 살피고 전망대를 기어올라가는 동안 형제는 경악하여 서로를 마주보았다. 트라이앵글이 왜?
몸을 바닥에 바짝 붙이고 웅크린 채 조심스럽게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선원이 외쳤다.
“활입니다! 무장했습니다! 무장한 사람들이 부둣가에 서 있어요! 못해도 50명은 되어 보이는데요! 어, 그리고 전부 여잡니다!”
“뭐라고!”
사인이 허둥지둥 밧줄을 잡고 전망대로 기어올라가 선원을 밀쳐내고 망원경을 잡았다. 도대체 괄괄하지만 선량했던 트라이앵글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크게 확대된 시야에, 비록 십 년이 흘러 피부가 훨씬 거뭇해지고 눈두덩이는 움푹 패여 성숙해지긴 했지만, 도저히 몰라볼 수 없는 얼굴이 잡혔다. 사인이 부르짖었다.
“탄젠트!”
“탄젠트가?”
코사인이 허둥지둥 전망대로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가 다 올라가기도 전에, 저쪽에서 확성기라도 잡은 듯이,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를 건너 목소리가 쩌렁쩌렁 건너왔다.
역시 익숙한 목소리여서 코사인은 밧줄에서 그대로 미끄러질 뻔 했다.
“당신들은 이 마을에 닻을 내릴 수 없다!”
“탄젠트!”
사인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탄젠트! 우리야! 네 동생들!”
“당신들은 이 마을에 닻을 내릴 수 없다! 돌아가지 않으면 계속 활을 쏘겠다.”
“탄젠트! 날 모르겠어?”
“돌아가 모든 배에 전해! 사인과 코사인 형제를 태우고선 절대 이 땅에 발들일 수 없다고!”
두 사람은 귀를 의심했다. 간신히 기어올라온 코사인이 사인의 손에서 확성기를 빼앗아 외쳤다.
“이 미친년!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또 전해! 이 트라이앵글에 모든 책임을 버려둔 채 무책임하게 떠난 남자들아! 너희는 모두 돌아올 자격을 잃었다! 트라이앵글 출신의 해적을 태운 배는 누구든 돌아올 수 없다고 전해!”
곧 선장의 눈이 두 사람을 향했다. 그들은 방금 막 배의 모든 식량을 먹어치운 상태였다. 트라이앵글에서 물자를 보충하지 않으면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사인은 침착하게 선장의 성격을 떠올려보았다. 그는 선장에게 곧 내려가겠다고 수신호를 하고, 코사인과 천천히 전망대를 내려와 뱃전에 섰다. 선장이 그들에게 성큼걸음으로 다가오는 순간, 사인은 코사인의 목덜미를 잡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형제는 수영을 잘했다. 별탈 없이 얕은 물가까지 헤엄쳐 온 코사인은 핑 하는 섬뜩한 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잠수했다. 곧 그의 바로 옆으로, 날카로운 화살이 둔중하게 물살을 가르며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코사인은 벌컥 물을 들이키고 기침을 하며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두 형제는 헤엄을 치느라 기력이 빠진 몸으로 허우적거리며 외쳤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뭐가 문제야!”
“너희는 모르겠지.”
이제는 확성기를 쓰지 않아도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탄젠트를 선두로 해서, 검은 두건을 쓰고 팔에는 저마다 흉기를 든 오십 여 명의 여자들이 해변가로 걸어왔다. 저 멀리서 배는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사인과 코사인 형제가 배에서 탈주했으므로 저 배는 항구에 닻을 내릴 자격을 얻은 것이다. 저 배는 사인과 코사인 형제를 두 번 다시 태우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이 마을에 발이 묶이고 만 것이다. 형제는 망연자실해 울부짖었다.
“왜 이러는 거야, 탄젠트!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그러자 여자들이 일제히 웃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형제가 천천히 성난 기색을 지우고 시무룩한얼굴이 되어 눈치를 볼 때까지 그들은 큰 소리로 웃어댔다. 탄젠트가 손을 들자 웃음이 뚝 멈췄다.
“너희가 떠난 후 이 마을의 모든 천둥벌거숭이 같은 남자애들이 따라 떠났지. 우린 덕분에 여기 발이 묶였다. 집에, 부엌에, 설거지통에 내 손과 발이 묶였어. 떠나간 놈들에게는 다시 돌아올 장소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우린 자랐어. 우리의 부모들이 늙어버릴 때까지 자랐지. 떠나간 탕아 중 몇은 돌아왔고, 죽었다.”
사인과 코사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탄젠트는 여전히 큰 키와 억센 손아귀를 가지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갈색의 눈동자도 그들 기억 속 그대로였다. 그러나……
탄젠트가 말했다.
“너희에게도 그 애들과 마찬가지로 선택권을 주겠다. 뻔뻔스럽게도, 제 기회를 위해 남의 기회를 짓밟고 날아가버린 놈들아, 당장 이 마을을 뜰 테냐, 아니면 죽을 테냐?”
사인과 코사인은 필사적으로 탄젠트를 말리러 나와줄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았으나 오직 그들의 누이를 위시한 벽돌 같은 활잡이들만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해를 등진 채 서서 그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사인은 손을 더듬거렸다. 코사인의 차가운 몸뚱이가 잡혔다. 코사인도 발을 더듬거려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 코사인은 언제나 사인보다 눈치가 없었다.
“적어도 먹을 것을 조금이라도 줘! 그리고 쉬게 해 줘! 그런 다음에 떠날게.”
활시위 오십 개가 그들의 몸을 겨누었다.
그들은 곧 울면서, 힘이 빠진 손과 발의 근육을 움직이려 애쓰며, 다시 먼바다로 멀어져 갔다. 천천히 항구로 향하던 배에서 뭔가가 번쩍이는 것을, 곧 바다 어딘가에서 물거품이 일다가 이내 잠잠해지는 것을 여자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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