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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6: 잠으로 돌아가기

2020-01-16(목)

 

잠으로 돌아가기

 

달걀과 닭의 싸움처럼 들리지만, 어쨌든 윤목은 잠이 먼저였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태초에 말이다. 다들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잠에 빠져 있었을 거라고. 그러다가, 누군가 불가피한 이유로 불현듯 눈을 뜨고 움직이게 되었을 거라고. 그래서 분열이 일어나고, 손발이 따라붙고, 털이 빠지고, 그렇게 해서 인간이 생겨났을 거라고. 지현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지현이 그리는 태초의 모습은 윤목과는 많이 다르니까. 성스러운 빛을 등에 진 창조주가 입김을 불어넣자 최초의 날숨을 몰아쉬고 속눈썹을 팔락이며 말랑한 발로 대지를 밟는, 발가벗은 인간이 거기 ‘있었노라’. 지현은 늘 자신이 그렇게 독실한 사람은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윤목은 가끔 그가 자신과 완전히 다른 세계의 보호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영원히 윤목 자신이 받을 일은 없을 가호 아래서. 사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죽어서 무엇이 되든 두 사람은 지금 같이 살고 있으니까.

윤목은 곤히 잠든 지현의 뺨에 손을 살짝 대보았다. 따끈했다. 맨틀처럼 뜨거운 피가 지현의 피부 아래를 흐르고 있을 것이다. 이 별에 흐르는 암석의 색은 아마도 붉은 색. 지현이 잠든 모습을 볼 때마다 윤목은 역시 태초에는 잠이 먼저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완전히 의식을 잃고 누운 채 규칙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뿜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윤목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됐다. 창조주 같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이함이 거기 있었다. 사람들의 말마따나 태초의 순간이란 것이 정말 존재했다면, 그 순간이 그토록 신성하고 적막했다면, 그렇다면 존재를 알 길이 없는 신의 광휘보다는 느릿하고 깊은 박자로 뿜어져나오는 더운 숨소리가 더 어울릴 것이다.

 

윤목이 지현과 처음 만난 건 지난 해 1월의 일이었다. 룸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상황이 맞았다. 같이 살게 됐다. 단 두 번 만났으나 졸지에 생활 공간을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넓지 않은 거실에서 멀뚱히 무릎을 꿇고 마주보고 있었다. 지현이 먼저 말했다.

“저희 왜 무릎을 꿇고 있죠?”

그리고 대뜸 퍼질러 앉아버렸다. 윤목은 그때부터 지현을 좋아하게 됐다. 좋아하고 난 뒤 지현이 모태신앙인 걸 알아서, 윤목은 기독교인도 좋아하게 됐다.

지현에게 성향에 대해 말한 적은 없다. 말해도 상식적이고 사려깊은 그는 내색하지 않고, 말해줘서 고마워, 할 것이다. 그야말로 모범답변. 내가 그동안 무례하게 군 일이 있다면 말해 줘.

 

널 좋아한다고 말하면 우린 어떻게 될까?

 

윤목은 지현의 뺨에서 2mm 정도 떨어진 허공에 가만히 손을 댔다. 아지랑이처럼 전해지는 열기가 있다. 조금만 고도를 낮추면 무게 없는 솜털들의 감촉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윤목은 손을 거두고 제 자리로 건너와 누웠다. 몸에 힘을 빼고 뇌가 모든 근육에 정지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근육에서 힘이 빠지고, 눈꺼풀이 잠기고, 더는 기억에 저장되지 않는 그런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뇌가 까맣게 지워지고, 몸이 매트리스 아래로 가라앉고, 가라앉아 행성을 가로지르고, 몸에는 한 장씩 원시의 털이 달라붙어 자라고, 손등은 구부러지고 발톱이 자라면 윤목은 태초로 되돌아간다. 그곳은 무해하게 잠든 거대한 동물들의 세계. 느릿한 박자로 더운 숨을 몰아쉬며 영원히 잠들어있는 태초의 세계. 더운 열기에 몸은 녹아 움직일 수 없을 것이고, 의식은 분해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러다가, 그 틈에서 잘 아는 얼굴이 같은 박자로 숨을 쉬며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면, 구부러진 손등을 이마에 올리고 호흡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러면......

윤목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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