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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말리의 육십 번째 생일

2020-01-15(수)

 

말리의 육십 번째 생일

 

내가 보냈던 생일 중 최고의 날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였어요. 아버진 큰 고무보트를 빌려서 강-무슨 강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네요. 바다였을까요? 호수였을까요? 하도 오래 전이라. 다만 아버지가 바지를 푹 적신 채 날 그 위에 태워 물 가운데로 밀어주셨던 기억이 나요. 베이지색의 면바지가 온통 젖어 흙색이 되어 있었고요. 난 그 고무보트에 혼자 누워 있었죠. 큰 챙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요. 아마 언니의 것을 물려받았을 거예요.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은 많았는데…….글쎄, 여섯 살이 많았나? 하도 오래 전이라. 해는 챙과 구름으로 반쯤 덮였지만 여전히 뜨거워서 눈을 뜨기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설치해 준 낚싯대를 옆에 두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미리 보트 밑에 물고기를 풀어두셨더군요. 딸이 수확의 기쁨을 확실히, 100퍼센트의 확률로 맛보길 바라셨던 거예요. 뜨겁게 달아오른 고무 위에 느긋하게 누워 시간을 보냈던 기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그 뒤로 거의 반년 동안은 빨갛게 탄 얼굴로 다녀야 했지만요.

난 이제 육십이고 아버진 오래 전에 돌아가셨어요. 난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아졌죠. 이렇게 사지를 의지대로 놀릴 날이 얼마나 더 남았을까요? 글쎼요, 십년만 지나도 난 지팡이가 필요할겁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혼자서 그 날의 행복했던 생일을 재현해보려 합니다. 그러면 정말, 원이 없을 것 같아요……

 

말리는 숨이 차서, 노를 놓고 보트 위에 앉아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등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간신히 잡아챈 검은색 구명조끼는 그 어떤 가림막도 없이 망망대해 위로 쏟아져 내리는 햇볕에 달구어져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았다. 바다 위에서는 수면에 빛이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기 때문에……더 뜨겁고….또….더 빨리 피부가 타고…… 말리는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열다섯 살때도 내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던가? 더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만이 그때와 같은 듯 했다. 말리는 조끼를 벗어서 잠시 망설이며 손에 쥐고 있었다. 검은 고무로 된 구명조끼의 표면은 곧 발화점에 달할 것처럼 뜨거웠다. 이걸 더 입고 있다가는 저온 화상이라도 입을 것 같았다. 정말 그러지야 않겠지만, 말리는 고민 끝에 조끼를 다시 입는 대신 옆에 내려놓았다.

말리는 다시 검은 구명보트 위에 혼자 있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더라? 말리는 그저 태평양을 횡단하여 돌아오는 크루즈 여행에 응모했을 뿐이다. 술잔을 부딪히고 새우의 껍질을 까고 옆 테이블의 사람에게 먼저 농을 걸던 날들은 마치 있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이틀 전만 해도 말리는 편안한 침대에 걸터앉아, 선실에 비치된 보드카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런 독주는 취향이 아닌데도 그럭저럭 마실 만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체가 흔들리더니……

 

말리는 기억을 물리려고 애썼다. 그런 것들을 기억해봤자 허기만 심해졌다.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든 이 망망대해를 탈출하는 일이다. 아무 것도 없이…… 아니, 그래도 난 운이 좋은 편이지. 난 보트를 잡았잖아. 다른 사람들은…… 안 돼. 말리는 혼잣말을 했다.

“안 돼.”

목소리는 형편없이 쉬어 있었지만 육체성을 띤 소리가 귀에 꽂히는 감각이 생경해 말리는 몇 마디를 더 중얼거렸다.

“다시 노를 잡아. 분명 금방 육지가 나올 거야.”

뜨거운 빛은 명백히 말리의 눈을 손상시키고 있었다. 챙 모자. 그게 있었다면. 말리는 생각했다. 왜 나는 열다섯의 생일을 재현하겠답시고 크루즈에 올랐으면서, 챙 모자를 놓고 왔을까. 낚싯대도.

말리는 몸에 남은 기운을 점검해보았다. 기운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아직 탈수 증세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말리는 깡마른 팔로 보트에 달린 안전끈을 끌어와 명치께에 묶었다.

무모한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상체를 조심스럽게 물에 담가 이곳이 얼마나 깊은지-얼마나 육지에서 멀리 떨어졌는지, 그리고 혹시 떠다니는 해초라도 건질 수 있을지 알아볼 셈이었다. 어린 말리는 고무 보트에 누워있는 것이 지겨워지면, 상반신을 풍덩 물에 담그고 보트 아래를 헤엄쳐다니는 물고기들을 괴롭히곤 했다. 아, 물고기가 정말 많았었다. 손을 이렇게 휘저으면 손에 미끈하고 차가운 비늘이 스치곤 했지……

말리는 반신반의하며 손을 빼냈다. 방금 내가 만진 게 뭐지?

이곳은 어린 소녀가 놀던 호수-또는 강-또는 연못-가 아니지만 확인할 방법은 어차피 하나였다. 말리는 끈이 단단히 묶였는지 다시 확인한 다음 조심스럽게 상반신을 물에 담갔다.

그리고 말리는 커다랗고 은쟁반 같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비늘로 덮인 커다란 몸을 저 아래 아득한 심해까지 뻗은 채 말리를 올려다 보는 은쟁반 같은 눈과.

그것이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미리 수면 위에 고기를 풀어두셨더군요…… 딸이 수확의 기쁨을 확실히, 100퍼센트의 확률로 맛보길 바라셨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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